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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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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지용
작성일 2001-09-18 (화)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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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복제에 대한 과학과 신학의 대화 (Howell)
인간복제에 대한 과학과 신학의 대화
◎ 글쓴이:N. R. Howell
◎ 주제:현대과학과 기독교신앙

서론: 우리의 처지를 파악하면서

이 논문은 북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과학의 대화 현황에 초점을 맞추고 인간 복제에 관한 전망을 모색함으로써 종교-과학 사이의 대화를 위한 점증하는 시도들에 기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이 논문은 우선 북미에서의 연구를 주도하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관한 여러 입장들을 검토할 것이다. 둘째로, 이 논문은 인간복제에 관한 기대를 증폭시키는 유전학적 연구와 기술에서의 최근 업적들에 대해서도 고려할 것이다. 셋째로, 이 논문은 인간복제로 인해 야기될 가능성을 지닌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과제들을 규명할 것이다. 넷째로, 이 논문은 인간복제에 관한 건설적인 기독교적 대응을 제안할 것이다. 이 논문에서 제안되는 건설적인 신학은 인간복제에 관한 추상적인 전망이나 추상적인 신학적 교리들을 넘어서 특정한 사회적-역사적 상황에서의 신학적 대화를 정초하는 문화적 전제들을 향하는 사고를 요구할 것이다. 다섯째로, 이 논문은 인간복제에 관한 종교-과학의 대화를 위해서 지금까지 제시되었던 것과는 다른 방향들을 제안할 것이다. 인간복제에 관련된 종교-과학의 대화는 종교들 간의 대화와 국제적인 대화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점차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입장은 무엇인가?":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관한 전제들

과학과 종교를 연계하려는 북미학계에 본 연구가 적절하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몇 가지 전제들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전제들은 대체로 이안 바버(Ian Barbour)의 기초적인 연구에서 추려 올 것이다. 이안 바버는 물리학과 신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점차로 부각되고 있는 과학과 종교 관계 분야에서 중요한 거목이다. 특히 그의 유형론과 연구결론들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학문적 논의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버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네 개의 뚜렷하고도 역사적인 관계 유형들을 제시했다. 관계의 첫째 유형은 과학과 종교 사이의 상충(conflict)이다. 바버는 상충 관계에 있는 종교와 과학의 두 사례를 들었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적 문자주의와 과학적 물질주의였다. 미국에서 성경적 문자주의는 기독교 근본주의에서, 그리고 (남침례교회와 같은) 복음주의적이고 보수적인 개신교단들에서 흔히 볼 수 있다.1) 성경적 문자주의란 기독교의 성경에는 어떠한 오류도 있지 않다는 신념을 특징으로 하는데, 말하자면 성경은 모든 면에서 오류가 전혀 없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진실하고 권위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적 문자주의는 미국 안에서 공립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에 관한 뜨거운 논쟁을 추동시키는 주요동인이기도 하다. 성경적 문자주의자들은 진화란 단지 이론일 뿐이기 때문에 생명의 기원들, 특히 인간 생명에 관해 치우친 입장에서 교육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2) 그들은 학교에서 진화론 대신에 창조론을 가르치거나 적어도 양자를 동시에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창조에 관한 창세기의 설명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성경의 창조가 다윈주의나 진화론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성경적 문자주의와 마찬가지로 과학적 물질주의도 과학과 종교는 상충한다고 본다. 과학적 물질주의는 "과학적 방법은 지식으로 가는 신뢰할 만한 유일한 통로"라는 인식론적 주장과 "물질은 우주의 근본적인 실재"라는 형이상학적 주장을 특징으로 한다. 이와 같은 부류 중에는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과학자들, 즉 칼 새건, E.O.윌슨, 리차드 다우킨스, 스티븐 와인버그 등도 포함되어 있다. 새건은 그의 저서 <우주>(Cosmos)에서 신을 "자연"으로 대치하면서 기독교의 권위주의적인 관념들이 과학적 방법의 궁극성을 위협해 왔다고 주장한다. 사회학자인 윌슨은 종교는 인간들의 생존적 장치였지만 이제 과학이 종교를 대치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이렇듯이 과학적 물질주의와 성경적 문자주의는 명백하게 대치되지만 바버는 이러한 두 관점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주시한다: (1) 심각한 상충은 과학과 종교적 신념을 분리시킬 것이라는 신념, (2) 확실성에 기초한 지식을 추구한다는 기본적인 인식론, (3) 과학과 종교가 자연의 역사에 관해 서로 경쟁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동의.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서의 둘째 유형은 상호무관성(independence)에 근거한다. 이 관점에서는 과학과 종교는 상호 대조적인 방법과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별도의 영역을 관장한다고 본다. 신정통주의 신학과 실존주의 철학은 방법적 견지에서 과학과 종교를 분리하는 입장을 취하는 좋은 예이다. 신정통주의는 신의 계시에 신학방법론을 정초하면서 과학적 방법은 관찰과 추리에 근거하고 있음을 받아들인다. 그런가하면 실존주의는 인격적 자아에서 비롯된 주관적인 지식은 무인격적인 대상들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과는 구별된다고 주장한다. 실존주의 철학이 종교와 과학에 관여하는 한에서는 종교적 지식은 주관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은 객관적인 것으로 분리된다. 철학은 때로 과학에서 언어의 기능도 분리한다. 즉, 과학적 언어는 자연 현상에 적용되면서 예견과 통제를 용이하게 하는 반면에 종교적 언어는 개인적인 종교 체험을 표현하면서 도덕성을 고양하고 삶의 방식을 고무한다는 것이다. 스테펀 제이 구드는 그의 저서 <시대의 초석들: 삶의 충만함에서 보는 과학과 종교>에서 과학과 종교를 비중첩적 교권체제(Non-Overlapping Magisteria)로서 분리하고 과학과 종교 사이의 상호불간섭적인 존중의 원리를 주장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나는 과학과 종교가 어떠한 설명이나 분석 구도로 연합되거나 종합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나는 그 양자가 왜 서로 충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 과학은 자연계의 기능적 성격을 분석하고 그러한 사실들을 규합하여 설명할 수 있는 이론들을 개발하려고 한다. 반면에 종교는 이와 동등하게 중요하지만 전혀 다른 인간의 목적, 의미와 가치 등에 대해서 다루는데 이러한 분야는 과학의 사실적 분야에서 밝혀내기는 하지만 결코 해결할 수는 없는 것들이다.3)

구드와 같이 과학과 종교의 상호분리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양자가 서로 충돌하거나 경멸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나 바버는 이러한 분리주의자들은 상호간의 건설적인 대화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고 지적한다.4)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서의 셋째 유형은 대화(dialogue)이다. 과학과의 대화를 통해서 종교는 과학적 발견에 대응하는 신학을 재형성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바버는 근대과학의 태동을 위한 역사적 정황에는 자연이란 필연적이기보다는 우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기독교가 놓여 있었고 과학은 자연을 탈신성화하는 세계관에 기여한 기독교적 조망에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탐구에서 극한에 관한 질문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답해질 수는 없다. 이러한 한계 질문들은 과학과 종교가 자연현상, 윤리, 의미 등에 대해서 대화하는 단계로 돌입할 수 있는 계기들을 제공해 준다. 토마스 쿤과 이안 바버는 과학과 종교 사이의 대화가 특히 범형과 모형, 은유를 사용하는 데 나타나는 방법론적 평행성으로 인하여 효과적일 것이라고 간파한 학자들이다. 매튜 팍스, 브라이언 스임과 토마스 베리, 셀리 맥페이그, 그리고 로즈마리 류터의 신학에서 조성된 자연중심적 영성들은 과학과의 대화에서 영향을 받은 신학에서 강조되는 자연의 신성함에 대한 반응을 입증한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서의 네 번째 유형은 정합(integration)이다. 과학과 종교의 정합은 자연신학, 자연에 관한 신학, 그리고 형이상학 등에서 발견된다. 전통적인 자연신학은 자연에서의 설계라는 증거로부터 신의 존재를 추론하는데 이 때 과학은 자연에서의 질서와 합리성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그 창조적 계획성을 옹호한다. 현대적인 생태신학으로서 자연에 관한 신학은 과학과도 중첩되는 관심을 함유하고 있는 창조론과 같은 교리들을 재구성하기 위해서 과학으로부터 광범위하게 받아들인다. 형이상학은 인간의 우주체험의 폭넓은 범위를 해석하기 위한 포괄적인 세계관을 제공하기 위해서 과학과 종교의 체계적 종합을 지향한다.
이 논문에서 나의 관심은 인간 복제가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밝히고자 하는 데에 있다. 인간복제에 관한 현재의 전망이 과학과 종교 사이의 상충, 무관, 대화, 정합 중 어느 하나를 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가? 인간복제가 기독교에 어떻게 도전함으로써 양자 사이의 상충이나 분리가 불가피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인간복제가 과학과 종교 사이의 대화나 정합을 강화하도록 보장해 줄 것인가?
그러나 이 문제에 직접 들어가기 전에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가능성들을 전망하기 전에 복제과학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와 인간복제에 대한 전망을 간략히 살펴보는 것이 도움될 것이다.


유전자학에서의 새로운 경향들: 인간복제를 향한 도정에서

'생명 복제'나 '복제된 생명체'라는 용어는 이제 일간신문에서도 익숙하게 나오는 말이다. 복제물(clone)이란 기존하는 생명체의 유전적인 복사를 뜻한다. 복제(cloning)란 그러한 유전적 복제물을 제조하는 자연적 또는 실험적 과정을 가리킨다. 밭에서 감자가 생산되거나 동물에서 쌍둥이들이 태어나는 경우에는 복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5)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복제물들은 상대적으로 공통적이며 많은 문화권에서는 예를 들면 쌍둥이와 같은 복제물을 "정상"이나 심지어 바람직한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목축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생명복제에 대해서 더욱 익숙할 것이다. 왜냐하면 1960년대 이후 선택사육의 속도를 증진하기 위해서 생명복제가 시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생명복제에서의 초기 시행은 주로 상업적인 동기를 지니고 있었으며, 배아분리를 통한 복제는 우유생산증대나 양질의 모피를 위한 것이었다.
동물의 복제를 위한 기술로서의 배아분리는 실험실에서 난자에 수정하여 배양판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세포 분열이 일어나게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포분열은 지나치게 오래 계속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결국에는 배아 세포가 완전한 동물체를 산출하거나 동물의 어떠한 기관으로 발전할 능력을 점차로 잃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아의 세포는 8개로 될 때까지 분열되게 한다. 8개의 세포가 되는 단계에서 배아는 현미경으로 측정해야 할 정도로 작은데 이 배아 세포를 다루기 위해서는 현미경과 탐사침이 필요하다. 이 기술에서 특별히 어려운 것은 각 세포들을 서로 분리하여 자르기 위해서 작은 배아를 다루어야 하는 것인데, 일단 이 과정이 성공하면 배아는 할구라고 불리는 개체 세포들을 다수 산출한다. 이제 할구들은 자궁과 같이 수용적인 환경에 이식되는데 그 안에서 할구들은 몇 단계의 세포분열을 거친 배아 세포보다는 새로 수정된 접합체처럼 활동한다. 배아분리가 성공하면 하나의 동물이 되는 대신에 유전적으로 동일한 8마리 또는 그 이상의 송아지나 양으로 자라게 되는 할구들을 산출한다. 본질적으로 배아분리는 쌍태나 다태라는 자연적 과정을 실험실에서 모방하는 것이다.
배아 분리를 통한 자연 복제와 실험복제에 이미 익숙해 있기 때문에 돌리라고 불리운 양의 복제에 대한 로즐린 연구소의 발표는 '생명복제'에 대해 모르고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별로 주의를 끌지 못했다. 일반인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던 것은 생명복제 그 자체가 아니라 일찍이 예측하지 못했던 인간 복제의 가능성을 함유한 새로운 복제 기술이었던 것이다.
1997년 2월 스코트랜드의 배아전문가인 이안 윌모트와 로스린 연구소의 동료들이 핵의 전이라 불리는 새로운 기술로 돌리를 복제했다고 발표했다.6)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논란을 일으킨 이 발표는 배아 세포로부터의 복제가 아니라 성숙한 DNA세포로부터 복제를 이루어 냈다는 점에서 놀라운 것이었다.
생명 복제에서의 새로운 업적은 세포제공자와 수여자의 주기를 일치시키는 기술에 의존하는데, 그 이유는 제공자의 DNA가 수여되는 난자에 이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공자의 활동적인 DNA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연구팀은 제공자의 세포에 영양 공급을 중단했다. 그리고 제공자와 수여자의 세포를 합성함으로써 과학자들은 제공자의 핵이 수여되는 난자와 혼합되었을 때 일어나는 정상적인 세포 분열이 일어나도록 했다.7)
핵의 전이는 제공자의 핵과 수여자의 난자 준비를 필요로 한다. 최종적으로 복제시키려는 동물로부터 DNA를 받아들이는 난자에게서는 그 자신이 지니고 있는 DNA를 제거해야 한다. 제공자의 핵도 유사한 방식으로 본체로부터 제거되어 보존되어야 한다.
그 다음 단계는 제공자의 핵과 수여자쪽의 난자를 합성하는 일이다. 연구자들은 미세관을 사용하여 제공자의 핵을 세포의 외부 표면과 이에 가까이 닿아 있는 내부 피막 사에 위치시킨다. 수정과 같은 과정을 이루기 위해서 연구자들은 교류전기 충격을 사용하여 핵의 피막과 난자의 피막에 구멍을 낸다. 그리고는 직류전기를 사용해서 양 세포의 혼합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수정이 이루어진 후에는 혼합된 세포가 여러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배아로 발전하면서 대리모의 자궁에 이식된다. 실제로 돌리는 핀 도르셋이라는 암양의 복제였기 때문에 배아는 임의의 대리모에 이식되었는데 따라서 자연임신과 같은 오류가 벌어질 가능성은 없었다. 이러한 시도를 무려 277회 한 후에 오로지 돌리만 생존했다.
복제양 돌리는 생명복제기술의 엄청난 혁신을 뜻하는 것이어서 많은 상상을 불러 일으켰다. 정상적으로는 배아단계를 벗어난 세포는 배아 단계에서의 세포가 지니는 잠재력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 초기의 배아세포가 한 개체 동물이나 그 일부기관이 될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 세포들은 이내 분화되고 만다. 물론 분화된 세포들이 초기의 배아세포들과 동일한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지만 분화된 세포의 DNA중에 일부는 활동적이고 일부는 비활동적이게 된다. 눈의 색깔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활동적이고 다른 기관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비활동적이면 그 활동적인 유전자는 바로 눈의 일부가 된다. 그런데 일단 이러한 분화가 이루어지고 나면 눈의 일부가 된 세포의 DNA와 같이 모든 세포의 DNA는 다른 기관이나 한 동물체로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 복제양 돌리에서 놀라운 사실은 이미 분화된 세포로부터 복제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1950년대 이후에 받아들여져 온 과학에 의하면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생명복제에서의 이러한 획기적인 과업은 돌리에 관한 발표에 이어지는 이정표들을 보도하는 대중매체들을 사로잡았다. 양 복제에 대한 흥미가 계속 이어짐에 따라 돌리에 관한 두 개의 주요한 이야기가 보고되었다. 첫째 이야기는 돌리의 세포의 나이에 관한 것이었다. 돌리 복제의 주원료인 유방세포는 여섯 살된 핀 도르셋이라는 암양의 것이었다. 돌리가 세 살이 되었을 때 대중매체들은 돌리의 DNA가 9살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돌리의 신체 기관과 단백질은 새 것이지만 그의 DNA는 제공자의 나이와 보조를 맞추어 간다는 것이었다. 대중 매체가 전한 둘째 이야기는 돌리가 그 후손을 정상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돌리가 자연적인 경로로 임신하고 출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이상한 제조물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돌리가 핵의 전이를 통하여 생산된 가장 명백한 복제이긴 하지만 이것이 곧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로즐린 연구소가 1997년 2월 돌리의 복제를 발표한 직후 생명복제에 관한 두 번째 실험의 성공이 발표되었다. 1998년 7월 하와이대학교의 류조 야나기마치는 쥐의 복제를 발표했다. 그의 실험실에서는 1997년 12월에 큐물리나로 불리는 쥐를 성공적으로 복제했다. 이로부터 발표시점에 이르기까지 "하와이대학 실험실을 돌아다니는 50마리의 복제쥐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복제의 복제도 있었고 어떤 후손들은 재래적 방식으로 사육되기도 했다." 하와이대학교의 이러한 업적은 어떤 면에서 로즐린 연구소의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비록 복제 기술이 양보다 작은 쥐의 난자, 그리고 세포가 둘로 분열된 후기 단계에서 쥐 세포의 분화에 조율되어야 하긴 했지만 하와이대학의 핵 전이의 정제기술로 인하여 복제의 성공률을 한층 높일 수 있었다. 생명복제에 관한 최근 소식은 동물체의 기관을 인간의 몸에 이식하기 위하여 돼지를 복제하는 것에 관한 보고도 있었다.
복제양 돌리가 탄생했다는 로즐린 연구소의 발표가 생명복제에 관한 과학적 연구의 시작인 반면에 이 이야기는 또한 동물과 인간 복제의 적절성에 관한 정치적, 종교적, 윤리적 논의를 촉발시키는 출발점이 되었다.


* 이하 내용은 [기독굣사상] 2001년 4월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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