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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앙모
작성일 2011-07-09 (토) 13:22
ㆍ추천: 0  ㆍ조회: 1662      
IP: 27.xxx.6
요즘 유행하는 이단 자료!

요즘 유행하는 이단들은 과거에 이미 다 비슷하게 있었던 것들입니다.



참고: 이단들이여~ 여기에서 이단이라고 사용한 것은 사이비라는 단어가 아닙니다.

이단들은 오해하지 마시고 문자 그대로 처음은 같으나 끝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본문내용: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두 책은 강력한 사상적 변화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이것을 분리시킨다는 것은 초대교회에서 조차 쉽지 않았다.



당연히 유대인들이 주축이 된 초대교회에서도 구약사상을 끌어들인 예가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할례와 안식일과 음식과 제사와 절기 등등의 문제였다.



그런 것들이 모두 과거로 돌아갔다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던 자들이 있었다.

그 중심에는 보이는 것을 쫓으려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쫓는 차이였던 것이다.



눈에 보이는 구약의 할례는 신약시대 새로운 백성들이 구별된다는 영적인 의미였다.

그런데 그것을 좀 더 확증하기 위해서 유대 그리스도인들 조차 보이는 할례를 강조했다.



여기에 맞서서 사도바울은 예수의 새로운 시대에는 그런 것들이 옛 것임을 강조한다.

이렇게 초대교회부터 옛 것과 새것을 구분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오늘날은 과연 어떠한가? 오늘날도 과거와 비슷한 흐름이라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안상홍파는 유대절기인 유월절 지키기를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또한 안식교는 안식일을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기독교의 주일과 극구 맞서고 있다.

그리고 여호와 증인은 구약의 단일사상을 가지고 신약을 재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들의 중심에는 문자적 해석과 신,구약의 구분의 실패로 나타난 것이다.

안상홍파는 유월절은 영원한 규례이기 때문에 지금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러한 성경구절을 증거로 내세운다.

그런데 유월절이라는 절기자체가 영원한 규례인가? 즉 보이는 절기가 영원한가?



결론은 결코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자적 해석의 오류는 여기에서 분명히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유월절은 그리스도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는 그림자적인 의식이었다.

그리고 예수는 그 유월절을 성취하기 위해서 실제로 유월절 그 날에 죽으셨던 것이다.



즉 예수는 구약의 그림자인 유월절을 이루려고 십자가에서 희생 당하신 것이다.

이렇게 실체인 예수는 그림자라는 유월절을 자기 몸으로 영원히 성취하게 된 것이다.



또한 유월절의 양이나 소나 혹은 희생 재물들도 모두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유월절에 사용된 모든 것들이 그림자인데 어떻게 유월절 자체가 그림자가 아닌가?



매우 초급적인 생각으로 접근한 이러한 이단들이 초신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유월절의 참 실체는 유대인의 것도 아니며, 또한 신약시대 성도들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독자적으로 이루실 십자가의 죽음과 희생재물을 의미하며 그가 이루실 그림자적인 절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왜 유월절을 자기들 의식으로 만들어 놓고 유대인들과 같이 또 다시 지키려고 하는가? 이미 예수가 다 이루시고 지키신 것을 말이다.



또한 안상홍파는 세례도 단순한 의식이 아닌 실제적인 의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보이는 세례는 보이지 않는 영적세례를 상징한다.



세례는 유월절과 같은 절기나 혹은 율법적 의식이 아닌 신약시대 구원의 출발을 의미한다.

물론 거짓된 마음으로 세례를 받는다면 사실상 영적세례와는 무관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세례를 거행한 것이지 세례 자체가 영적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런데 왜 세례는 지키는데 유월절은 지키지 않는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세례는 유대인의 율법적인 공통의식과 절기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세례는 절기와 무관하게 예수께서 친히 받으셨고 구원의 사역을 걸어가셨다.



세례가 의식을 지키는 모세의 절기나 유대인의 법적인 의식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세례는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혹은 구약 성경이 의무적으로 정한 의식이 아니다.



오히려 세례는 유대절기와 무관하게 새로운 실체를 기다린 세례요한에 의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세례를 예수가 친히 받음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위해서 사역하게 된 것이다.



또한 세례가 구약 유대인들의 관습이라고 해도 사도들이 성령에 의해서 정한 것이다.

그러나 율법이라는 유월절 그 날짜를 지키라고 사도들이 강조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렇게 안상홍파는 가장 기초적인 표면적 세례와 이면적 세례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들은 표현적 세례를 이면적 세례와 동일시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소한 초대교회가 지켰던 의식은 성경문헌과 그리고 고대 문헌에서 자주 등장한다.

1~3세기 교회가 세례와 안수와 감독과 장로와 집사를 세운다는 말은 종종 등장한다.



물론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은 거의 전무하고 또한 그런 주장은 생각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신흥종파가 2천 년이 지나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한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다음은 안식교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역시 구약사상에 뿌리를 깊이 두고 출발한 신흥종파다.



어쩌면 안상홍파의 또 다른 비슷한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결론으로 안식일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안식을 의미하는 구약의 절기에 해당 된다.



그 안식일의 의미는 유월절을 지키고 그 다음날 안식을 취한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예수는 자신의 몸으로 유월절을 지키시고 안식일 날 온전히 무덤에 묻히셨다.



심지어 날짜도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이렇게 안식일은 이미 성취된 구약의 그림자였다.

그런데 누가 용감하게 그런 절기들을 가지고 신약시대에 지켜야 된다고 주장하는가?



육식을 회피하는 안식교는 구약에 근거해서 피를 먹지 않는다는 내용과 비슷하다.

이런 사상은 이미 약 2000년 전 초대교회에서 나타난 음식문제와 매우 흡사하다.



바울은 명백히 안식일이나, 절기나, 월삭 등등을 폄론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이 경고는 교회가 그런 것들을 따라가려고 할 때에 경고하는 차원에서 가능한 발언이다.



안식교는 돼지를 잡아 먹으라고 베드로에 나타난 천사의 경고까지 무시할 것인가?

또한 바울도 고기를 억지로 먹지 않았다는 내용은 없고 오히려 먹었던 내용은 등장한다.



신약시대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와 백성과 예배는 모두 하늘에 속한 영적인 요소들이다.

그래서 육적인 유대인들의 절기와 백성과 이스라엘이 모두가 다 옛 것이 된 것이다.



이런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신약시대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겠는가?

안식교는 철저히 새 언약에 들어오지 못하고 옛 의식을 붙잡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럼 왜 그랬을까? 약속과 성취, 그림자와 실체, 옛 언약과 새 언약.....

또한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 표면적인 것과 이면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 이해의 기초는 예수는 새로운 것을 성취했다는 것으로부터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구약을 접근하면서 예수의 그림자를 차근차근 발견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런데 구약과 신약의 구분도 없이 구약도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게를 둔다는..

핑계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오류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것이 그림자와 실체다.



다음은 여호와 증인인데 이들은 구약사상으로 접근한 전형적인 구약중심의 이단이다.

앞서 말한 안상홍파와 안식교는 보이는 의식을 신약화 시켰다면 여호와 증인은 구약 전체을 신약화 시키고 신격화 시킨 것이다



이들은 구약성경을 가지고 신약성경을 모두 덮어 버린 구약사상에 의한 이단이다.

결국 구약의 신론, 내세론, 인간론으로 신약의 신론, 내세론, 인간론을 모두 덮어 버렸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삼위의 관계중심이 아닌 구약의 유일신 성부만 남게 된 것이다.

물론 성부 중심의 신학자체만을 가지고 이단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피조물로 격하시키고, 그의 육체의 부활까지 부인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구약의 물질중심 사상으로 [육체의 피=생기=영혼]은 같다고 주장한다.



영혼을 단지 육체의 피와 동일시 한 결과 영혼을 단순한 생기(에너지)로 이해한 것이다.

그 결과 사람이 죽은 것은 [생기=영혼]이 소멸하는 것으로 주장하게 된 것이다.



즉 사람이 죽으면 그 [육체의 피=영혼]도 죽은 상태로 무의식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구약의 육적 중심의 생명관으로 접근한 결과 수혈까지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성경은 계시록에서 육체로 죽은 자들이 영혼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밝힌다.

죽음이 영혼까지 죽는 것이라면 어떻게 육체도 없이 영혼으로 하늘에 존재하는가?



계시록은 피뿌림을 받은 자들이 즉 이미 죽은 자들이 영혼으로 찬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여호와 증인의 말대로 어떻게 피뿌림으로 다 죽었는데 영혼으로 살아있을까?



또 [육체=영혼]이라는 공식은 [사람의 영혼]이라는 성경적 표현을 파괴한다.

성경은 사람이 영혼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영혼이 육체와 독립적으로 분리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성경은 일반적으로 일관되게 [영혼의 사람]이 아닌 [사람의 영혼]으로 표현한다.

이는 [영혼=육체]가 아닌 사람의 요소인 [육체와 영혼]이 구분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부자에게 [네 영혼]을 오늘 밤 찾는다는 하나님의 경고에서 부자가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말한다. 즉 피=영혼이라면 어찌 죽은 자의 영혼이 신과 함께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은 사람의 요소인 [육체와 영혼]에서 부자의 영혼을 몸에서 분리하겠다는 경고다.

즉 몸에서 영혼이 떠나면 육체는 흙으로 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간다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다른 이론이 있는데 그것이 소외 지방교회 곧 형제교회라는 곳이다.

이들의 논리는 앞서 말한 물질주의 영혼 개념보다 동양 자연주의 혼합사상으로 영혼을 이해하고 있다.



즉 여호와 증인은 유물론적 기독교 이단이라면 지방교회는 자연주의 기독교 이단이다.

자연주의 기독교 이단인 지방교회는 동양사상으로 동양에서 만들어진 대표적 이단이다.



지방교회의 문제점은 영이라는 존재로 모두 통일시키려는 [영] 중심의 신학이다.

[하나님=성령=예수의 영=사람의 영]으로 통일 시킨다.(예수의 영=성령으로 이해)



그 결과 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성도가 하나님과 실재로 하나가 된다고 말한다.

정상적인 이해는 성령의 독립적인 내주로 이해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과 실재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된다는 일체사상으로 나타난다.

그 역할이 성령이며, 예수의 영과 동일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삼위혼합체 사상이다.



앞서 말한 여호와 증인은 영혼을 물질화 시킨 반면에 지방교회는 영혼을 신격화 시켰다.

여호와 증인은 영혼을 피(생명)으로 이해하며, 영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정신(생각)일 뿐으로 주장한다.



지방교회는 영은 실존하며 혼은 물질의 생기라고 이해하고 있다.

결국 죽으면 혼은 사라지고 사람의 영만 남게 되는 것인가?



다음은 구원파를 살펴보자.

가장 어처구니 없는 신학이며 또한 초신자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사상이다.



이미 다 알고 있듯이 죄인이 의인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절대 구원종파다.

그런데 문제는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회개가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든 죄를 다 용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상에 초신자들이 홀딱 반해서 넘어가는 경우가 주위에 종종 많다.



그런데 성경은 바울도 회심 이후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다.

또한 믿다가 낙심한 자가 다시 돌아와서 회개한 예도 있다.



이렇게 구원파는 객관적 예수의 구원에 대한 것을 주관적으로 적용시키지 못한 것이다.

즉 객관적 십자가 사건을 주관적 적용을 삭제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한 예로 모세의 구리뱀 지팡이를 본 자는 다 살아나기 때문에 사막에 꽃았다.

드디어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와서 그것을 보고 병이 낫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중에 온 사람은 늦게 쳐다봄으로 늦게 나았을 것이다.

이렇게 신약시대도 구리뱀이라는 십자가에 우리의 구원도 순서와 시간대로 적용된다.



이와 같이 예수의 십자가 구원에 적용되는 순서도 2천년 동안 시간 속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개인이 구원 받는 것도 처음부터 믿고 완전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시간 안에서 개인도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을 끝까지 이루라고 말한다.

또한 바울은 구원을 내가 다 이룬 것도 아니라 십자가를 향해서 쫓아간다고 말했다.



이렇게 개인구원도 전 인생을 두고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순간적인 것이 아니다.

즉 이미 우리는 구원의 빛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그 빛을 끝까지 보고 나가야 한다.



또한 성경은 구원에서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라고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

또한 한번 구원의 터를 닦았으면 다시 그 터를 닦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이렇게 성도 개인의 구원도 시간 속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에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죄를 짓기도 전에 미래의 죄까지 모두 사함 받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시간 속에 살면서 구원을 적용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을 때에 과거의 죄는 모두 사함을 즉시 받았을 것이다.(성경은 믿을 때에 죄사함을 받았느냐? 라고 질문한 말씀이 있다)



이것도 시간 속에서 내가 어느 순간 믿음으로 과거의 죄를 모두 사함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도 마찬가지다. 구원파는 이런 단순한 시간 논리도 이해를 못하고 있다.



물론 과거의 죄는 이미 지나가서 내가 어느 순간 믿고 회개함으로 모두가 용서가 된다.

그러나 미래의 죄는 아직 오지 않았고 죄를 순간순간 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과거의 죄를 해결한 것처럼 미래의 죄도 시간 속에서 회개해야 맞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인정한다면 죄도 시간 속에서 지었기 때문에 회개도 시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타당하다. 구원파는 시간을 파괴한 무시간적 구원을 주장한 전형적인 예이다.



또 한 가지는 구원파는 죄를 원죄와 자범죄로 구분하지 않고 원죄 중심으로만 이해한다.

물론 예수의 죽음으로 죄에서 해방 되었다는 것은 원죄에서 해방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죄에서 해방되었어도 개인은 여전히 자범죄를 짓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아담으로 오는 원죄와 구분되며, 우리는 자범죄에 대해서 용서받는 것이 옳다.



또 구원파는 성경에서 의인이라고 말한 것을 가지고 신자의 죄인임을 전면 부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내 의가 아닌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인으로써 여겨주시는 칭의다.



성도는 의인이 현재 완성된 것보다 신께서 죄인를 의인으로 여겨주시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죄인들을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여겨주시고 계시는 중이다.



믿는 자가 죄인이 아니면 결코 죄를 지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짓는다.

즉 우리는 여전히 육체를 가지고 죄를 짓는 죄인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의가 우리를 날마다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인이 완성되는 때는 우리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완성된다.



이것은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사는 동안 여전히 죄를 짓는 죄인이지만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든지 죄를 용서받음으로 항상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지만 동시에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죄사함을 받는 의인으로 여김을 받는다.



결론으로 구원파는 객관적 구원과 하나님의 칭의에 대한 주관적 적용을 파괴한 무시간적 구원론과 칭의론을 만든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는 객관적이고, 적용은 시간 안에서 이루어지며 그 안에서 개인이 주관적으로 시간 속에서 적용되는 것이 정상적인 이해라고 본다.



끝으로 신천지라는 이단은 초급과정을 조금 보았는데 너무 황당해서 패스합니다.

어느 정도 다룰만한 가치가 있어야 다루는데 이것은 성경 다시 만들기 운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부족하지만 대충 이단들에 대해서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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