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에 이어 낙태와 중절수술, 대리모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존엄한 인간의 생명이나 인격을 다루는 문제이므로 깊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논쟁에 불을 붙인 격인 '대한의사협회의 윤리지침 채택'은 성급한 일이어서 파문과 반대가 불보듯 뻔합니다.

의료계는 그동안 실질적으로 진행된 의료현장의 일들을 명문화한 것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종교계나 법조계는 신앙이나 명문화된 자구로부터 반대적 해석을 내세웁니다.

우리 사는 세상엔 옳고 그름을 반드시 가릴 수는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중요한 건 이제 이런 문제들을 공개토론장에 올려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이 문제는 대한의사협회가 61쪽짜리 간행물 - 짙은 초록과 연한 연두색 배열이 생명적(?) 이미지를 지닌 - 로 선언적으로 선포할 사안은 아닙니다.

거기에 보면,

소극적 의미의 안락사 허용(28조,30조,60조)외에,

제 54조 - 신중하여야 하며,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이렇게만 하면 낙태죄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제 56조 - 금전적 거래목적의 대리모 관계는 인정하지 아니한다(이 경우가 아니면 도덕적 법적 갈등 없이 수정된 태아(?)를 제3자 여성의 자궁에 심는 일을 해도 된다는 뜻임)고 선언했습니다.

김수환 전 추기경은 '왜 카톨릭에서는 낙태를 죄로 규정하고 금지시키는가'에 대해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그분은 주로 '천부'(天賦)란 말로 생명의 존엄성과 우연성(수많은 정자와 난자의 우연한 접촉이란 과학적 설명도 있습니다만)을 주장하셨습니다. 자연과학은 반복성과 증명을 필요로 하지만 인간생명은 과학으로 풀 수 없는 신비와 우연성을 지닌 불가침의 신성한 영역이란 겁니다. 이걸 인간이 제 뜻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논리인데 동의합니다.

아무래도 논의의 출발점은 '과연 태아(?)가 생명체인가?' 일 듯 합니다.

우선 태아는 생명체입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자보건법, 민법, 상법 등에서 예외적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위헌심사과정을 거치면 최상위법인 헌법에 지는(?) 규정들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명시적으로 '태아는 생명이다'라고 규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모든 인간은....으로 시작되는 제10조 규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걸 뒷받침하는 학설과 판례를 보면 분명 태아는 생명체입니다.

대학시절 한번쯤은 읽으셨을 김철수님의 헌법학개론 어딘가에는 '기본권능력은 민법상 권리능력보다 광범위하다, 죽은 사람이나 태아에게도 기본권능력은 인정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권영성 교수님은 한발 더 나갔습니다. '생명이 수태로 시작되는 것이라면 태아도 생명권의 주체가 되는 것으로 본다'는 겁니다.

판례도 마찬가지입니다. 1985년의 대법원 판례는 '회임된 태아는 새로운 존재와 인격의 근원이다, 인식이나 방어능력 여부와 별개로 보호돼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민법은 출생이 완료됐을때부터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합니다. 주로 재산권 문제를 다루는데다가 남자아이일지 여자아이일지가 불분명하고 또 쌍둥이나 세쌍둥이가 태어날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출생완료설).

형법은 보다 광범위하게 태아를 인정하고 보호합니다. 진통이 시작되면 그건 사람이고 생명이란 겁니다. 진통 이전에 살해하면 '낙태죄', 진통 이후에 살해하면 '살인죄'가 성립합니다. 이건 태어나지 않은 아이도 생명으로 보고 보호하자는 법정신입니다.

종교계도 '신이 내린 생명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반대합니다.

물론 의료계에서 주장하는 원하지 않은 임신(강간..)이나 기형아출산의 위험 - 이 경우의 낙태도 무조건 금지하자는 건 아닙니다. 성스러운 의료행위로서 또는 환자를 돕는 행위로서 abortion은 인정하되 일반적 윤리규정이나 지침으로 광범위하게 이걸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법적 종교적 사회적 반론에 앞서 이걸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들은 아이가 잉태하는 순간부터 태교란걸 합니다. 산모와 태아간에 대화가 이뤄진다는 것 - 의료계도 인정하는 과학적 사실입니다. 경험하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태아의 심장박동, 발차기는 '나도 생명이다'란 외침입니다.

다음 대리모.

태아복제가 운위되는 이 시기에 논의의 초점이 잘못 맞춰진 것 같습니다. 수고비(?)로 돈을 주지 않더라도 이건 상당히 희화적 추태입니다. 반드시 아이가 필요하다면 다른 과학적 수단이 필시 있을 겁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혹은 정자나 난자의 이상으로 2세를 얻지 못하는 경우는 분명 있습니다. 조금 참고 기다리면 과학적으로 제3자의 자궁을 빌지 않더라도 아이를 임신하고 기르고 출산하고 양육할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입양은 어떤가요? 대리모, 이건 인권을 모르는척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생명의 잉태와 출산이 사랑의 과실이라면 이건 사랑에 대한 모독입니다.

한국의 의료계 윤리규정.... 잘못쪽으로 중심추가 가 있습니다. 다만 성스러운 이 문제를 논의의 장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선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정성근의 투데이에서 발췌 편집함

<관련기사 >

● 의사 윤리지침 채택 무산

대한의사협회가 낙태와 대리모 인정, 소극적 안락사 허용 등
현행법과 배치된 내용을 담아 논란이 됐던 「의사 윤리지침」
중 현행법에 저촉되는 사안은 실정법을 준수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의협은 이 지침안을 28일 대의원 총회에 보고한 후 바로
시행하려 했으나, 「의협회장 직선제 선출」을 둘러싼
대의원들의 입장 차이로 총회가 무산돼 윤리지침도
함께 보류됐습니다.

의협 김세곤 공보이사는 29일 『의사 윤리지침이
실정법을 어기면서까지 의료 현장에 적용되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며 『논란이 된 사안들은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돼, 지침은 실정법 테두리
안에서 적용될 것이라는 설명문을 첨부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