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신학과 윤리

ㆍ작성자	김상석
ㆍ작성일	2001-05-24 (목)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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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킹혼의 종교관과 과학관, 이얀 바버
폴킹혼(John Polkinghorne)의 과학관과 종교관(1)
강윤구

-사실이냐 견해냐?/'어떻게'와 '왜'의 변증법-

폴킹혼은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퀸즈컬리지의 학장이고 영국국교회의 사제다. 그리고 전에는 소립자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였었다. 이러한 그의 배경은 과학시대의 신앙과 그리고 함께 마주하는 과학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하였고, 따라서 '과학'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한 순간도 생각할 수 없는 우리 현대인에게 소위 '과학시대'라는 현재를 살아가면서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차근차근 그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의 과학과 종교(좁게 기독교라고 하는 것이 솔직할 것 같다)에 관한 사상을 이 좁은 지면에서 모두 설명한다는 것은 필자의 능력에 부치는 일이기 때문에 몇 번에 걸쳐 몇 개의 범주로 나누어 이야기하려고 한다.
과학은 매우 인상적이다. 우리 모두는 과학의 성공으로부터 혜택을 입고 있고 과학의 진보 덕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것들을 우리의 일상 속에서 누리며 산다. 또한 과학은 우리의 정신을 계몽시켜주고 상상력을 넓혀주기도 한다. 하지만 종교와의 관계를 물을 때 사정은 달라진다. 사람들은 그 관계가 대립적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이지만, 과학이 종교와 대립된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과학이 종교적인 물음, 예컨대, '하나님은 존재하는가'와 같은 모든 종교적 물음에 대답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폴킹혼에 의하면, 과학과 종교에 관한 두 가지 오해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 오해란 과학과 종교를 각각 단순히 사실과 견해의 차원으로만 보려는 데에 있다. 우선 과학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부터 말해보자.
과학자들과 관계 있는 '사실'은 이미 해석된 사실이다. 대부분 우리는 사건의 전모를 직접 바라볼 수는 없다. 우선 볼 수 있는 사물들로부터 추론해야만 하고, 그 추론은 이론적인 해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해석이 없이는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여기서 문제는 이렇다. 해석을 위해서는 이미 어지간히 과학을 알고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바라볼 수는 없다. 우리가 선택한 세계관을 가지고 보아야만 한다. 세계관을 선택하는 일은 '실상은 이럴 것이다'하는 내기의 지적인 모험행위를 수반한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과학자들은 눈 뒤에 안경을 쓴다'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대상이 아니고 그들이 바라보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은 사실(fact)과 견해(opinion)의 혼합물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건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비논리적인 사항들을 가려내어 제거하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는 어떤 교본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일은 결국 판단의 문제요 따라서 정보에 입각한 견해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이것을 폴킹혼은 도로 지도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도로 지도는 A에서 B로 가는걸 돕는 데에 유용하지만, 우리는 자동차 도로가 얇고 푸른 선들이라거나 도시들이 굵고 검은 점들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록 지도가 어느 지방에 관한 모든 진리는 아닐지라도, 그 지도가 진리의 최소한의 일부라도 나타내지 않는다면, 지도는 결코 지도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지도는 물리 세계에 대한 모든 진리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다. 언제나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진리의 일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원자나 전자에 관해 알기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과학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만(모든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물리 세계의 지도를 그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폴킹혼은 과학에 관한 이런 견해를 믿는 이유 세 가지를 말했다. 첫째는 과학이 사물의 존재하는 방식(the way things are)의 여러 측면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자의 개념(그 움직임으로 전류를 흐르게 하는 물질의 가장 작은 입자)은 어떻게 화학이 작용하는지, 원자를 '볼 수 있는' 전자 현미경을 만들게 했다. 둘째로, 과학은 세계가 무엇과 같은 것인지(what the world is like)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뉴턴은 빛을 입자로 본 반면, 당대 네덜란드의 호이겐스(Huyghens)는 반대로 파동으로 보았다. 또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은 빛을 전자기장적 에너지의 파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세기 초 막스 플랑크(Max Planck)와 아인슈타인은 빛이 어떤 경우에는 파동으로, 또 다른 경우에는 입자로 보여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셋째로 과학은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라는 신념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기발한 장치를 고안해서 무언가를 얻어 내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 세계가 실제로 무엇과 같은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기상학을 예로 들어보자면, 기상학자들은 단지 날씨를 예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날씨가 어떻게 지구의 바다, 육지 덩어리 그리고 대기와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생겨나는지 이해하기를 원한다.
모든 사람들은 종교가 신앙과 관계 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신앙이 사람들의 눈을 가리우고 불가능한 것들을 믿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신앙은 어떤 비약을 포함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둠으로의 비약이 아니라 빛으로의 비약이다. 종교적 물음의 목적은 과학적 물음과 마찬가지로 진상이 무엇인지(what is the case)에 대해 동기화된 그 신념을 탐구하는 것이다.
폴킹혼은 과학과 종교가 실상 내면에 있어선 지적인 사촌간이라고 믿는다. 둘 모두는 신념 또는 신앙의 동기를 탐구하며, 둘 중에 어느 것도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을 주장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각각은 해석과 경험간의 상호작용에 그 결론을 바탕하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 종교와 과학은 교정과 수정의 가능성에 열려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어느 것도 단순히 순수한 사실이나 순수한 견해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종교와 과학은 모두 이해하고자 하는 위대한 인간의 위대한 노력의 일부인 것이다. 이것이 곧 과학과 종교의 유사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학과 종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첫째, 과학은 사물에 실험적인 테스트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방식을 통해 임의적으로 처리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속성상 인간의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될 수 있다면, 이미 하나님이 아니게 된다. 인격적인 경험의 영역에서는, 우리 자신의 경험이든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든 간에, 우리 모두는 시험(testing)이 믿음(trusting)으로 대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학도 어떤 분야는 시험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우주론과 진화생물학이 그 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실험해볼 수많은 우주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부분적으로 그 역사가 알려져 있는 단 하나의 세계를 우리는 가장 잘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역사 과학에서, 우리는 단지 제한된, 어떤 면에서 보면 부분적인, 경험에 대해 우리의 임의대로 가장 적절한 설명을 찾아야하는 것이다. 역사 과학은 신학에 가장 가까운 과학적 사촌지간이다.
둘째, 과학과 종교의 또 다른 차이점은 그 결과에 있다. 쿼크와 글루온(quarks and gluons)에 대한 신념이 우리에게 지적으로 만족스러울 수는 있지만, 우리의 삶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반면, 하나님은 단지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 지식은 과학적 지식보다 많은 것을 요구한다. 진리의 문제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요구할 뿐 아니라, 발견된 진리에 대한 헌신이라는 응답도 요구한다.
과학은 가치의 문제를 무시하지만, 이것이 곧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폴킹혼은 과학적 세계관의 제한된 지평을 넘어서는 시각을 가질 것을 권고한다. 예컨대, 아름다움은 단순히 감정이라고 볼 수 없다. 아름다움은 실재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창문이다. 사실, 무신론자들이 어리석은 것은 아니지만, 유신론은 그들보다 보다 많이, 훨씬 지적으로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
폴킹혼은 종교 경험의 일반적인 특징 두 가지를 말했다. 하나는 경외와 영광을 돌릴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실재(Reality, 다른 말로 한다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다)와의 만남에 대한 희미하고 단속(斷續)적인 인식이라 할 수 있는 예배이고, 다른 하나는 희망이다.
우리는 이해를 향한 탐구의 과정 속에서 과학과 종교 모두의 통찰을 필요로 한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어떻게?'를 묻고 대답한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사물과 사건은 움직이고 발생하는가? 한편 종교는 본질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하고 대답한다. 발생하고 있는 일의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는 의미와 목적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현재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자 한다면 이 두 질문을 모두 다루어야 한다. '가스가 연소되고 있기 때문에 주전자는 끓고 있다.' '내가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하기 때문에 주전자는 끓고 있다.' 우리는 이 두 대답 중에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둘 모두를 필요로 한다. 비록 그 두 물음들 '어떻게'와 '왜'가 다르기는 하지만, 그 대답들은 서로에게 어떤 믿을만한 관계성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나는 주전자를 냉장고에 넣었다'라는 말과 '차 한 잔을 마시려고 한다'는 말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상호 교감의 필요성 때문에 과학과 종교는 서로에게 말해주어야만 할 것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실재(하나님이든 물리 세계든 간에)의 본성이 무엇으로 판명될지 미리 결정할 수 없다. 실재는 우리가 자신을 실제 그 경험에 참여시키고서야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과학적 사실 대(versus) 종교적 견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종교와 과학을 가지고 실제 세계가 존재하는 풍요롭고, 다양하며, 놀라운 방식을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기독교 없이 역사를 재연할 수 없다. 창조에 관한 기독교인들의 사고 방식은 네 가지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첫째, 우리는 세계가 질서정연하게 존재하리라 기대한다. 왜냐하면 세계의 창조자가 합리적이고 변함없기 때문이다. 한편 둘째로, 창조자는 그가 원하는 방식이 무엇이든 자유롭게 우주를 창조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자연의 질서의 당위성을 사고하는 것으로서 세계를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관찰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관찰과 실험은 필연적이다. 그것은 그리스인들이 간과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셋째로, 세계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연구의 가치가 있다. 넷째로, 피조물 자체가 신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불경함 없이도 피조물을 자극하고 탐구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격들을 한데 모으면, 우리는 과학과 종교가 함께 갈 수 있는 지적인 자리를 가지게 된다.

이제 내용을 정리해 보자. 사실이지 대부분의 근대 과학의 선구자들이 종교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들은 분명히 교회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고 이단적인 지성에 속했었을 테지만, 종교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교육을 위해 두 개의 책, 즉 성서의 책과 자연의 책을 써주었다고 말하곤 했었다. 바로 여기서 폴킹혼은 정말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두 책들 모두를 해석해낼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즉 우리에게는 과학과 종교 모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제 더 이상 과학과 종교가 사실과 견해라는 범주 내에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 이미 사실과 견해라는 씨실과 날실로 얽혀져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이해하고, 하나님을 이해하고, 실재를 이해하기 위해서, 또한 우리의 신앙을 세우기 위해서 과학과 종교 모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폴킹혼은 스스로를 실재론자로 자처하면서, 통합적인 진리관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고 도서
John Polkinghorne, Quarks, Chaos, & Christianity, 1996
John Polkinghorne, The Faith of the Physicist,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