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컴퓨터

 어깨에 걸치는 '재킷형PC', 머리에 쓰는 '모자형PC', 손목에 끼는 '손목시계형PC'. 21세기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휴대용 컴퓨터 모습이다.
 3차원 컴퓨터의 등장도 예상된다. 손목시계PC, 펜던트PC같은 휴대용 시스템으로 홀로그램 영상을 통해 원격영상통화는 물론 인터넷등 각종 온라인통신망에 수록된 정보를 검색할 수도 있다.

 마이클 클라이튼의 동명소설을 영상에 담은 '폭로'에서 보여준 것처럼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라는 장치를 이용한 '가상현실'방식의 '전자도서관'이 길거리에서 가정의 거실이나 책상앞에서도 재현될지 모른다. 3차원 영상 디스플레이 기능을 갖춘 콘텍즈렌즈나 안경을 착용한 채 전자도서관에 연결해 입체영상자료중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게 된다면.1초에 수천건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신용카드 쇼핑, 항공권이나 호텔 예약 등이 가능한 웨어러블(werable) 컴퓨터의 등장은 가장 빠른 시간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습이다. 개인휴대단말기로 불리는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는 이같은 미래형 컴퓨터 등장의 가능성을 예고하는 시제품 성격마저 띄고 있다.

이처럼 2000년대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첨단시스템은 경박단소의 외양에 기능은 수퍼컴퓨터 버금가는 용량에 가상현실 기술을 응용한 모습이다. 따라서 일반인들도 현재의 자동차 운전보다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등장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같은 형태의 전자시스템은 일반인들의 삶의 형태를 크게 바꿔놓게 된다. 이동전화기능을 겸비한 손목시계 크기의 컴퓨터에 대고 '사무실'이라고 말하면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준다. 인공위성과 교신 가능한 손바닥 크기의 휴대용 컴퓨터는 '지금 광화문으로 가야하는데'라고 말하면 차량이 막히지 않고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하게 된다.

산업부문에서는 해전유전작업, 지하 수천 m의 땅속에 들어갈 지능로봇의 등장도 예상된다. 고층건물 공사현장에서 사람대신 무거운 물건들을 날라주고 도로에 버려진 담배꽁초 청소 역시 지능로봇의 임무가 된다. 유독가스가 가득한 화재현장에서 소방로봇이 불길 속으로 들어가 화재진압과 함께 인명을 구해낼 수도 있다.

또 가정용 지능로봇은 싱크대 위에 쌓여있는 그릇들을 말끔하게 씻어주고,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나 전자메시지를 수신, 주인에게 전달하는 비서역할을 탁월하게 해낼 수 있게 된다.

영화 이너스페이스에서 등장했던 초미세 마이크로머신이 인간의 혈관을 타고 들어가 암, AIDS등 난치병의 발병원인을 순식간에 제거해줄지도 모른다. 마이크로 머신은 다른 인체조직을 건드리지 않고 환부에 직접 약을 투입할 수 있어 현재 문제가 되는 부작용도 크게 줄일 수도 있어 인간의 수명을 예상밖으로 늘려줄 수도 있는 것이다.

반도체가 엮어낼 첨단혁명

20세기 들어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산업의 거목 미국 인텔사 내에 운영되고 있는 박물관이 있다. CPU(중앙처리장치)로 불리는 반도체 등장 이후의 기술진보 과정을 보여주는 이 박물관에는 'CPU에 내장된 트랜지스터 숫자는 1년6개월만에 한번씩 갑절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이 적혀있다. 인텔사 창업자중 한 사람인 고든 무어가 창안, 정보산업계에 회자되고 있는 전설적인 이 법칙은 지금까지 대체로 맞아 떨어져 왔다.

1978년 최초로 PC에 내장됐던 인텔 8088칩의 트랜지스터 숫자는 2만6천개. 최근 발표된 펜티엄프로의 트랜지스터 숫자는 5백50만개. 17년만에 정확하게 2백11배 늘어난 셈이다.

손톱만한 크기의 회로를 갖고 있는 칩에 새겨진 선과 선사이를 나타내는 선폭은 1978년 3마이크론로미터에서 1995년에 0.35마이크론까지 좁아졌다. 1백마이크론로 사람의 머리카락에 비해 2백85배나 좁은 간격에 회로를 촘촘하게 새겨넣을 수 있는 기술로 발전한 것이다.

트랜지스터 내장수를 결정하는 선폭은 CPU성능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때문에 전세계 반도체생산업체는 선폭을 줄이기 위해 온갖 실험을 펼친다. 전문가들이 관측하는 2020년의 CPU는 칩당 1백억개의 트랜지스터를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다. 이때 선폭은 0.03마이크론. 이같은 반도체가 등장하게 되면 현재 상상만으로 가능한 온갖 형태의 전자제품이 컴퓨터화 한다. 손목시계 모양의 '손목PC'는 물론, 펜던트 모양의 '패션PC'등이 실용화될 수 있을 것이다.

'심장'에 해당하는 배터리기술

반도체와 함께 21세기형 컴퓨터개발에 필요한 기술은 전지(배터리)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 반도체가 '두뇌'에 해당한다면 전지는 '심장'에 비유될 수 있다.

대부분의 차세대 첨단기기들은 휴대용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정보사회의 유목민족인 현대인의 생활에 맞추려면 끈없는 전자기기로 '언제 어디서나'를 위한 전자시스템이 개발돼야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대부분의 휴대용 시스템에서 이용자들의 불만이 가장 높았던 것 중의 하나는 배터리 성능이다. 충전을 끝낸 배터리로도 불과 몇분밖에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노트북컴퓨터 등장 이전에 탄생한 랩탑컴퓨터의 배터리로 사용가능한 시간은 불과 20-30분. 전원이 없는 곳에서는 무용지물로 돌변하는 '반쪽' 휴대용기기인 셈이다. 이동전화 역시 마찬가지. 통신회선이 연결돼 있지 않은 하늘이나 바다 한가운데, 산악지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이동전화는 초창기 여유 배터리 한 두 개를 함께 준비하고 다녀야 했다.

20세기말 현재 배터리 기술수준은 과거에 비해 놀랄만큼 향상됐다. 하지만, 노트북컴퓨터의 경우 윈도같은 멀티태스킹기능과 컬러화면을 사용하면서 전지소모량은 급격히 높아갔다. 향상된 성능의 전지기술은 현재의 하드웨어를 충분히 사용할만큼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다.

차세대 전지로는 리튬이온전지와 니켈수소(수소메탈)전지와 리튬고분자(폴리머)전지가 있다. 리튬이온과 리튬폴리머의 차이는 전해질. 양과 음을 넘나드는 전하를 옮겨주는 전해질의 차이에서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전해질로 리튬이온전지는 유기(기름)용매를, 리튬폴리머는 고분자(고체)를 사용한다. 수소메탈저지는 알칼리수용액(물)을 사용한다. 차세대전지는 기존 전지에 비해 훨씬 높은 힘을 갖는다. 리튬이온 전지는 한번 충전에 2백여km를 가는데 비해 납전지는 70여km밖에 못가는 차이점을 갖는다.

따라서 전지개발에 주력하는 과학자들은 차세대 전지의 기능을 극한상황에서도 마음놓고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용량을 갖는 전지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아직 손목시계나 소형계산기에등 전력소모량이 적은 기기에만 사용할 수 있는 태양전지의 기능개량이나 새로운 소재를 이용한 전지개발은 휴대용 시스템의 고성화와 함께 차세대 컴퓨터의 실용화를 크게 앞당겨줄 것이다.

신경컴퓨터 개발

에니악 등장 이후 지금까지 메인스트림(주류)로 군림해온 컴퓨터기술은 직렬방식의 노이만방식이다. 각 단계별로 정보를 처리하는 노이만 방식의 컴퓨터는 군대식 명령체계를 갖는다.

최근 컴퓨터전문가들 사이에 최대의 관심사중 하나인 신경망컴퓨터는 바로 인간의 두뇌의 닮은 꼴을 갖는 지능을 컴퓨터에 넣어보자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14억개의 뉴런(신경세포)로 구성된 정밀한 통합 정보시스템이다. 내부에서 발생하는 전기진동(임펄스)의 주기는 밀리세컨드(ms)로, 마이크로 세컨드에서 나노 세컨드 수준의 속도를 발휘하는 공학컴퓨터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멀리서 자동차나 개가 지나갈 때 순간적으로 인식하고 피할 수 있을까. 만약 노이만형 컴퓨터라면 '물체' '개' '사고' 등을 인식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인간이 이런 일을 순간적으로 동시에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대뇌에 퍼져있는 수많은 뉴런이 동시에 유연하게 정보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런이 데이터를 병렬처리하고, 대뇌피질의 지직저장고에서 '자동차에 부딪히면 다치거나 죽는다' '개는 물 수 있는 동물'등의 지직을 끄집어내 운동제어를 담당하는 소뇌에 정보를 전달, 길을 피하도록 명령하는 시스템을 갖춰놓고 있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컴퓨터에 시키면 지식 베이스의 구축을 포함, 엄청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수퍼컴퓨터나 초대형 메인프레임이라도 대단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정보처리 문제를 여러개의 프로세서에 분할 할당해 계산한 뒤 그 결과를 통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병렬로 처리하면 훨씬 고속화시킬 수 있다. 이는 인간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따라서 계산과정이 복잡한 정보처리는 수퍼컴퓨터로 불리는 대용량컴퓨터 아니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는 식의 명령을 받고서야 움직이는 노이만형 컴퓨터 대신, 인공지능이 판단하고 결과를 추론해 인간의 작업을 도와주는 차세대 컴퓨터가 자리잡을 것이다.

반도체 기술의 일반 예측대로라면 2000년에는 수천만 혹은 수억개의 소자를 갖춘 마이크로 프로세서와 10억 소자의 DRAM이 등장한다. 98년경에는 추론기능을 가진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1천개 이상 연결한 제5세대 컴퓨터를 VCR크기로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인지과학의 협력

차세대 컴퓨터 개발에 인지과학은 빼놓을 수 없는 학문분야중 하나. 인공지능 기술의 핵심인 '마음의 구조'를 연구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첨단과학이 불가능의 수수께끼를 현실화시켰지만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는 '뇌 구조와 사고원리'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는 상태. 무게 1.3-1.5kg. 몸무게의 2-2.5%에 신문지 한 장 정도의 표면적밖에 안되는 뇌의 비밀을 극복해야만 차세대 컴퓨터개발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인간과 닮은 꼴의 컴퓨터를 개발하려는 과학자들에게 뇌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인지과학은 인지심리학 인공지능학 신경과학 언어학 철학 인류학 등 문과와 이과를 아우르는 다양한 학문분야와 직접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스탠리 큐브릭 監督이 그린 인류의 대서사시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은 바로 인간이 꿈꾸는 미래형 컴퓨터 모습. 자신에게 위협적인 존재를 죽이고, 자신의 아픈 감정을 드러내놓을 수 있는 존재이다. 이같은 컴퓨터를 개발하는데 인간의 감정을 디지털방식으로 해석해보고자 하는 인지과학은 단연 돋보이는 접근방식이다.

이밖에 차세대 컴퓨터 개발에 필요불가결한 기술로는 바코드, 문자, 음성을 알아듣는 패턴인식 분야가 있다. 말의 뜻을 알아내고, 글의 특성을 풀이하는 문자패턴인식은 문서인식, 차량번호판인식, 필기체인식시스템을 낳게 되며, 사람의 음성을 인식하는 음향패턴인식은 신용카드, 지하철승차권, 건물출입증 등에 활용돼 신분증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도 있게 된다.

차세대 컴퓨터의 물결이 흘러넘칠 2000년대 사회를 과학전문잡지 옴니지는 이렇게 그린다.
[라 지 보이(La-Z-Boy)라고 불리는 안락의자는 인체의 맥박이나 심장박동, 혈압을 점검하고, 유전자 연쇄에서 개인의 영양섭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프로그램한 의료용 컴퓨터에 직접 신호를 보내준다.
A씨가 마음이 울적해 맥주를 마시려고 한다. 이때 '라 지 보이'는 "당신은 지금 혈압이 높아요"라고 경고한다. 그가 냉장고에 가서 맥주를 마시려고 버튼을 누르자, "귀하의 현재 혈압상태로는 알콜이 좋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신경망컴퓨터의 속성을 갖고 수퍼컴퓨터 수준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차세대 컴퓨터는 인간의 한계능력을 무한대로 확대시켜줄 것이다.

보고서 작성을 하는 사람이 '오늘의 환율은?' 또 '지난 XX지역 인테리어 공사견적이 얼마였지?'라는 물음에 즉각 답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은 현재와 같이 너저분한 책상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또 예술분야에 적용된다면 인간의 상상력은 한결 빛을 발할 것이다. 조선조 산수화의 대가 김홍도가 차세대 컴퓨터를 이용한다면 동물의 눈빛을 정리한 수백가지 데이터베이스를 참조, 살아 움틀거리는 듯한 개와 고양이를 등장시킨 새로운 유형의 미술작품을 만들 수 있게될 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을 토대로한 차세대 컴퓨터의 활용목적이다. 차세대 시스템이 만들 사회가 '빅 브라더'와 '유토피아'가 될 것인지 갈림길은 개발자 인간이 결정을 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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